이선원 _ 흐르는 물 – 無人空山 流水花開
2025.04.24 – 2025.05.24








이선원 Lee Sunwon
흐르는 물 – 無人空山 流水花開
[텅 빈 산에는 아무도 없지만 물 흐르고 꽃이 핀다]
“無人空山 流水花開”는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1037~1101)이 남긴 시구절로 이후 불교 선종에서 자성(自性)의 경지를 이르는 말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어떤 논리적 판단과 사고를 넘어서서, 오직 자신 속에 있는 자성이 드러남을 궁극으로 삼는 정신을 ‘물 흐르고 꽃 피는’ 자연에 담아 ‘청산은 절로 청산이요, 백운은 절로 백운’인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은 절로 움직이고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있다. 작품 ‘흐르는 물’ 연작은 이전의 작품 ‘숲 그림자’, ‘물 그림자’ 연작들과 연결된 주제로 동양의 ‘산수(山水)’ 개념을 화면에 풀어본 것이다. 산수는 산과 물이 짝이 되어 쉼 없이 변화하는 총체적 개념의 풍경화이다. 높은 산이 있으면 낮게 흐르는 물이 있고 단단한 바위에는 부드러운 풀과 나무가 자란다. 산수화는 감상자에게 자연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내와 나무와 꽃과 바위를 감상하고 같이 자연의 파트너로 남도록 이끈다. 산은 텅 비었으나 고요하지 않다. 물 흐르는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꽃이 피는 순간까지- 그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 작품들을 보는 감상자가 자연과 교감하며 그 생명력을 느꼈으면 한다.
한지작가로 작업하며 ‘나무’는 80년대 후반이후 계속된 나의 작품의 재료이고 주제이다.초기에는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 줄기를 삶고 갈아서 직접 종이를 떠내기도 하고. 닥펄프에 여러 천연섬유(fiber)들을 넣어서 회화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잔 나뭇가지에 여러 겹의 한지를 쌓아 올려서 한옥공간을 형상화하기도 하며 종이의 물성을 중심으로 작업하였다.
어느 날 제주 곶자왈 숲 속에 갔을 때 나무들은 내게 겹겹의 숲 그림자를 보여주었고 이 풍경과의 만남은 작품 “숲 그림자” 연작을 그리게 하였다. 이후 산과 물이 함께하는 산수(山水) 개념과 함께 자연스레 ‘물 그림자’, ‘흐르는 물’ 연작들을 그리고 있다. 오랜기간 나에게 영감을 준 한지의 물성 위에 나무, 숲, 물을 그리며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내는 작품의 여정이 계속되길 바란다.
2025. 4. 이 선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