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의 풍경 A scene of absence

2025.08.22 – 10.11

고찬규 KOH CHAN GYU

상실의 시대에서 만나는 풍경

오광수(미술평론가)

고찬규의 <상실의 시대에서>는 우리시대 서민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독립된 개체로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결같이 생활에 찌들린 모습을 하면서. 그것이 빈 배경의 공간적 구성에 의해 ‘복잡한 심리적 층위’를 드러내 독자한 설정을 만나게 한다. 서문에서 강선학은 이들 인물들을 가리켜 “오늘날 정위없이 내던져 있는 인간의 존재론적 상황에 대한 탐색이자 우리가 처한 인간 실존의 물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고찬규의 인물상들은 예사롭지 않은 상황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어느듯 그것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환영되어 나온다는 데서 그 독특한 설정을 간파하게 한다. 말하자면 화면에 그려진 인물상이나 그 인물이처한 상황이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자 상황이라는 보다 절실한 반영구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인물이나 상황은 다분히 비판적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어쩌면 감당 못할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텅 빈 모노톤의 공간 속에 위치한 인물들은 더욱 분명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지만 한편 인물과 배경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팽팽한 공간적 긴장관계가 상황의 절실성을 대변하면서 단순한 인물성의 차원을 벗어나게 하고 있다. 화면가운데 자리하거나 때때로 화면의 가장자리에 치우친 인물은 단순한 소재와 배경이란 설정에서 벗어나 공간의 의미를 한결 강조해주고 있다.

아이를 업은 중노의 여인이 빈 철제의자를 배경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대합실의 모습을 담은 〈먼 길〉은, 배경의 빈 의자와 여인의 구차한 보따리가 대비를 이루면서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가하면, 외이셔츠차림으로 바삐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남정네(하루)와 골목바닥 연탄재의 대비에서도 가벼운 긴장감이 일어난다. 깡마른 손으로 앙상한 목덜미를 감싸는 여인의 불안한 시선(불면도시)이나 비에 후줄그레 젖은 소녀의 망연자실한 표정(장마)이, 또 무지개가 뜬 하늘을 배경으로 웃저고리를 호기있게 어깨에 둘러맨 남정네의 꿈꾸는 듯, 또는 당황한 듯 엉거주춤한 표정(무지개)이 한결같이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반영해 주고 있다. 냉소적이면서 때로는 상황에 순치되어 가는 자신에 대한 한없는 비굴감을 감추지 못하는 정황이 실감있게 전달되고 있다. 인물들은 한결같이 습기가 가신 건기의 깡마름이 상황의 전시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마디가 진 손가락과 튀어나온 광대뼈, 먼 곳을 향한 무표정의 표정, 작아진 하반신의 왜곡된 모습의 과장이 존재의 치열성을 대변하기에 족하다. 우리가 시대의 인물상, 그것도 자각의 서민상을 이렇도록 치밀하게 걷잡아간 예도 흔치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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